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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물결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떠들석한 말소리.

선 채로 잠들기라도 했던걸까.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듯한 기분에 오보로는 눈을 깜빡였다.

저 앞에서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는 선생님의 밀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뒤쪽에서 들리는 쟁알쟁알 떠드는 목소리는 필히 제 사제들의 목소리일것이겠지. 앞에서도, 뒤에서도, 그리고 제 아래에서도 사박사박 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처럼 당연한 이 일상이 왜 이리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앞서가는 쇼요의 뒷모습을 차마 계속 지켜보지 못하고 오보로는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수업을 땡땡이치다 선생님께 꿀밤을 먹었을 긴토키 녀석은 저 뒤에서 신스케와 투닥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코타로는 역시나 착실한 모범생 답게 싸우는 둘을 말리는 중이였다. 한 손에 들려 덜렁거리는 보라색 천 보자기 안에는 아침에 일어나 만든 주먹밥이 잔뜩 들어있으리라.

봄의 벚꽃과 주먹밥이 더해지니 꽤나 소풍 분위기가 나는 듯 했다. 그 때문일까, 가슴을 가득 채웠던 안타까움은 어느새 훌쩍 날아가고 그 자리를 들뜬 기분이 가득 채웠다. 사람을 절로 들뜨게 하는 봄의 마력이였다. 한 결 가벼운 표정이 된 오보로는 성큼성큼 아이들에게 걸음을 옮겼다.

싸우는 녀석들에게 끼어들어 머리를 한대씩 쥐어박으니 꿍얼거리면서도 결국 말싸움을 멈춘다. 저러다가도 곧 으르렁거리며 다시 싸우기를 반복하겠지만 지금이라도 멈춘게 어디랴. 오분이라도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기적이였다.

아까 멍하니 있던 시간이 길었던것인지 조금 걷자 어느새 목적지였던 커다란 벚나무가 보였다. 마을에서도 꽤 귀한 대접을 받는 벚나무였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 사이에서는 벚나무에 신령이 깃들어있다 믿는 이들도 적잖아 있을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한 나무였기에 벚꽃이 활짝 핀 이런 봄날에는 그 경치가 실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낙하하는 벚꽃잎을 조심스레 낚아챘다.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 문득 떠올라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였다. 손을 펴 보니 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꽃잎이 눈에 들어온다. 최대한 살살 잡았음에도 여린 꽃잎이 견디기엔 역부족이였나보다.

오보로는 고개를 들었다. 분홍빛 물결. 사제들의 손을 잡은 선생님. 사제들의 행복한 표정. 모두가 봄날의 꿈결이였다.

그리고 꿈은 언젠가 깨어버리고 마는 것.

봄의 마력이 다하니 싸늘한 땅의 냉기가 몸을 파고들었다. 땅이 차가운 것인가, 아니면 나의 몸이 생명을 잃고 식어가는 것인가. 오보로의 입에 실소가 번졌다.

이 몸에 흐르는 불사의 피는 몇번의 죽음끝에 모두 메말라버린지 오래. 이대로 죽는다면 저승에서나마 그 분을 뵐 수 있을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자 팔랑이며 떨어지는 벚꽃잎이 보였다. 굳은 손가락을 뻗어보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분홍빛 꽃잎은 무정하게 땅으로 스며들어 사라져갔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서서히 다가왔다. 제가 한 눈을 잃게 한 사제의 발걸음이였다. 마지막 순간, 까마귀는 제 죄를 모두 고백했다. 서서히 흐릿해지는 시야 저 멀리서 벚나무가 보이는 듯 했다.

이번에는 저 분홍빛을 잡을 수 있을까.

까마귀는 벚꽃잎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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